조선 왕실에서 왕자와 공주가 태어난 후 탯줄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기가 태어나면 궁궐에서는 아기와 어머니와 연결이 되었던 탯줄조차도 함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물며 일반가정에서도 탯줄을 선산에 묻어 주었으니 궁궐이라면 더 말할게 있겠습니까. 출산일이 다가오면 어의들은 바짝 긴장을 합니다. 지체가 높으신 분들의 몸이 조금만 아파와도 어의가 모든걸 책임졌다하니 오죽했을까요. 아이가 태어나고나면 백자항아리에 일주일 동안 보관했다가 몇 백 번 을 씻고 풍수지리 좋은 곳에 보관했는데 이곳을 '태실'이라고 합니다.
중전 간택시 왕과 왕비는 발이 쳐진 방 안에서 다과상 앞 여인들을 관찰하였으며 그 자리에 신랑은 참석하지 않는게 관례이나 헌종만은 참석.
조선시대 왕들 관련한 궁금한 이야기들
1. 조선시대 왕이 되기 위해 세자들이 받던 교육
요즘 드라마 슈룹으로 세자들의 왕이 되기 위한 교육에 대해 흥미있어집니다. 드라마에서 왕비가 모두에게 왕이 되는 훈련을 받는 비책을 몰래 주는 장면이 나와서 저걸 왜 몰래 주나 의아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왕이 되는 교육은 책봉받은 세자많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임금의 아들이 태어나면 원자라고 합니다. 원자가 15세쯤 되면 여러 학문이나 품행을 비추어 세자를 책봉하고 이후 세자는 성균관에 입학후 서강원에서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였습니다.
2. 조선시대 왕비간택 어떻게했나요
우선 결혼 적령기의 처너나 총각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궁궐에서 신부를 직접 뽑기위한거였겠죠. 왕비의 간택의 첫번째 단계인 금혼령이 내려지면 양반은 물로 일반 서민들도 혼인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는 이씨조선이었잖아요 그러니 신부는 이씨는 아니어야하겠죠. 그래서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성씨의 양반 자제들의 이름이 적힌 단자를 궁궐에 제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후 심사에 들어가는 거죠. 간택은 세 번의 심사를 거친다고 해요. 요즘 취업 시험보다 어려웠네요. 세 번째 심사까지 합격하면 왕실 교육받고 혼례를 치루었다고 합니다. 중전 간택시 왕과 왕비는 발이 쳐진 방 안에서 다과상 앞 여인들을 관찰하였으며 그 자리에 신랑은 참석하지 않는게 관례이나 헌종만은 참석.
3. 조선시대 왕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왕들을 무척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죽과 같은 음식으로 요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고 문인인사를 가죠. 할머니가 살아계시면 대왕대비 마마께도 문안인사를 드리고 이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맨처음 새벽회의를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많은 대신들과 나라의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해가 뜨고나면 유학의 경전 공부를 합니다. 이후 아침 식사를 하고 이걸 수라상이라고 하죠. 그러고 각 부서 업무보고 받고 점심 식사후에 점심 유교 경서 공부를 합니다. 이어서 파견 관리들 위로하고 잠시 휴식 후 저녁 식사, 이후 밀린 업무 한 후 다시 문안 인사로 다시 하루를 마감했다고 합니다.
4. 조선시대 궁녀들 생활은 어땠을까요?
궁녀들은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침전을 담당하는 궁녀, 의복, 수방, 세수, 간식, 음식 등을 담당하는 궁녀 등이 있었으며 궁녀들의 품격은 거의 하는 일과 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침전을 담당하는 궁녀는 아무래도 왕과 왕비를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이다보니 궁녀들 중에서는 품계가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소속 부처의 격이 높은 곳일수록 어린 궁녀를 뽑았는데 침전을 책임지는 지밀상궁의 경우 4~5세의 어린 나이의 궁녀의 나이로 시작을 합니다. 어린때부터 궁궐의 교양을 쌓아나가기 함이겠지요. 궁녀들은 대부분 일찍 부모를 여의거나 가난한 집안 형편의 평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겨우 4~5세 때부터 입궁하게되며 평생 혼자 살며 서로가 벗이 되어주기도 딸이 되어주기도 하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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